이번엔 축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마추어로 악기를 배우다 보면, 필연적으로 주변에 소문이 나게 됩니다.
생활의 터전인 직장이나 항상 함께 하는 친구들이 모르게 이어가긴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면, 각종 경조사, 특히 결혼식에 오브리까지는 아니어도 축주를 부탁받게 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자신의 실력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축주 부탁이 들어오면 꽤 난감합니다.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죠..)
일단, 아마추어 이기 때문에, 프로와 달리 축주를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만한 레파토리가 마땅히 준비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스즈키 교재를 연주할 수는 없으니..)
결국, 새로운 곡을 준비해야 하는 셈입니다.
관객에 있어서도 보통 하던 연주와는 많이 다릅니다.
듣기로 약속된 사람들 (가족, 친구, 동료..) 앞에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악단도 많습니다만..)
하지만 축주는 정말 프로처럼, 다양한 연령대와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서 멋지게 연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덜컥 받아들였다가는 후회 막심이기 일쑤입니다.
여러 해에 걸쳐 악기를 배우다 보니, 종종 축주 부탁이 들어오곤 합니다.
실력에 비해 부담이 큰 축주의 무대가 무서워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준비하곤 합니다.
축주할 때 이것만 기억하세요
1. 레파토리를 내가 편한 곡 혹은 하고 싶었던 곡으로 결정합니다.
축주를 부탁하는 사람이 곡을 정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단, 접수는 하되, 곡은 무조건 내가 자신있는 곡으로 합니다.
평소에 심심풀이로 연습해보던 곡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음악을 해보지 않은 대중 들의 경우, 곡을 말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막상 해보시면 알겠지만, 악보를 구하는 것부터가 일입니다.
즉, 평소에 툭툭 건드려 보던 곡이라면, 악보는 거의 확보된 상태이므로, 일이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는 하고 싶었던 곡을 골라봅니다.
실력에 어울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고 싶은 곡을 고르면, 동기부여에 도움이 됩니다.
축주 준비라는게 은근히 신경쓸 게 많아서, 하다가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생깁니다.
그럴 때면, 평소 하고 싶었던 곡이라는 사실이 계속 해나가는 데에 꽤 도움이 됩니다.^^
2. 편성을 확인합니다.
될 수 있으면 독주는 피합니다. 아마추어에게 독주는 정말 위험합니다. (실력이 정말 뛰어난 경우, 예외입니다.)
독주를 하면, 실수가 명확히 드러나게 됩니다. 최소한 피아노 트리오라도 편성하시길 추천드립니다.
현악기의 경우, 피아노가 포함되어 있으면, 음정을 맞추는데에 도움이 됩니다.
아무래도 피아노가 중심에서 음정과 박자를 리드하면 합주가 용이합니다.
드럼이 들어가면, 음악이 덜 심심한 효과가 있습니다.
관객들에게 좋은 호응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곡에 반전을 줍니다.
축주는 노래가 아닌 연주만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곡이 아무리 좋아도, 지루해지기 십상입니다.
진행하는 중간 정도에 반전 요소를 삽입하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드럼을 준비했다가, 중간 쯤부터 들어온다든지,
영상을 준비했다가 중간부터 틀면 좋습니다.
전에 썼던 방법으로, 1절은 연주만 하고, 2절 부터, 드럼과 노래를 추가한 적이 있습니다.
1절을 듣고, 사람들이 아 이노래.. 하고 듣기 시작했지만, 지겨워 질무렵, 드럼을 추가해서 흥을 돋구고,
노래를 해서 지루함을 반감 시켜 마무리 했습니다.^^
4. 음향 시설을 확인합니다.
연주 특성상 마이크의 힘을 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보통 행사장은 스탠드마이크만 있고, 핀마이크는 없습니다.
첼로나 피아노는 고정된 상태로 연주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스탠드 마이크 덕을 볼수 있지만,
바이올린이나 비올라처럼 공중부양 상태로 연주하는 악기는 스탠드 마이크의 성능이나 위치에 따라 취약한 면모를 보입니다.
그러다보면, 바이올린 소리는 하나도 안들리고, 다른 악기 소리만 들려서, 절름발이 같은 연주가 되기 십상입니다.
또한, 결혼식의 경우, 축가 자리에 가까운 곳에 계신 혼주 (부모님) 께서는 축주가 들리는데, 먼곳에 계신 혼주 (보통 신랑 쪽)는 안들리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열악한 음향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첫째, 연주자 수를 늘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연주자 수가 많으면, 보는 쪽에서도 꽤 흥미를 가지고, 모자란 음량도 보충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스탠드마이크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둘째, 핀마이크를 준비합니다.
준비는 곧, 구매 입니다. 그냥 바이올린용 핀마이크를 사서 씁니다.
속편한 솔루션이긴 하지만, 문제는 역시 돈이고, 돈이 곧 음질입니다. ㅎㅎ
적당한 마이크는 오히려, 음질이 좋지 않아 안쓰느니만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전 확인이 필수 겠지요.
하지만, 행사장이 정말 고요한 곳이 아니라면, 음질은 조금 좋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행사장의 시설에 연결 가능한 지 (단자, 앰프 등)를 체크 하는게 중요합니다.^^
5. 시간 관리에 신경씁니다.
일반적으로, 축주 특성 상 예식이 얼마 안남았을 때 요청이 들어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축주나 연주가 일상이고 생업인 프로라면 내일 연주라고 해도 나갈 수 있는 레파토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레파토리가 있다고 해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레파토리가 없는 경우에는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이런 시간과의 타협을 통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편성에 맞는 악보를 구하는게 힘들다면, 조금 흥미가 떨어지는 곡이더라도 악보가 있는 곡으로 과감하게 바꾸는 타협처럼 말입니다.
마지막. 책임감을 갖습니다.
축주는 누군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날을 위해 준비하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 입니다.
D-day가 가까워 질 수록 책임감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지고, 나를 대신할 사람은 없어집니다.
한번 축주를 맡겠다고 한다면, 이변이 없는 한 해내겠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합니다.
프로라면, 레파토리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고, 기본 내공이 있어서 조금 극복하기 쉽습니다만,
아마추어의 경우, 준비하면 할 수록 자신감이 사라집니다.
그런 때일 수록 처음 축주를 받아들였을 때의 마음을 잊지말고, 식장까지 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준비했던 축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했습니다.
함께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는 후배 두명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른 바, 오케스트라 커플)
식이 2주 남은 시점이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곡은 제가 원하는 곡으로 하겠다고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마침,(?) 축주로 어울릴만한 곡을 꽤 오랜 시간동안 연습해온 터라, 그 곡이면 시간 안에 어떻게든 해볼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다만, 연주자 편성은 피아노 트리오인데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원곡은 바이올린, 피아노 듀오 편성이었습니다.
그래서, 피아노의 멜로디 부분을 첼로로 편곡하는 작업이 필요 했습니다.
이 부분은 다행히 첼로 하는 친구가 전공을 한 친구여서, 전체적인 구도만 합의 하고,
구도 안에서 자유롭게 써오는 걸로 시간을 절약 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떠넘겼다는 이야기)
홀 규모는 300명 수용하는 크기로, 마이크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첼로 연주자가 전공생인 관계로.. 고가의 악기에 훈련된 보잉이 내는 울림 있는 소리에 대비해서,
백만원 대 중국제 수제 악기와 힘 꽉들어간 아마추어의 보잉으로 내는 꽉 막힌 소리와의 밸런스는 명약관화였습니다.
게다가 스탠딩마이크와 첼로와의 상성까지 고려하면, 바이올린의 운명은 바람앞의 등불 신세 였습니다. ㅠ
하지만, 예식장 담당자 분의 생각은 조금 다르더군요. 게다가 핀마이크의 울림판이 작아, 음질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결국, 스탠딩마이크로 해보기로 하고, 핀마이크 구매는 접어두었습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야)
보통, 축가나 축주 이전에 인사 멘트를 하는데, 잘 들리지도 않고, 하객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에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식으로 연주를 시작하면, 아무래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시작해서 하객들이 곡의 맥을 짚기도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연주 전에 멘트를 하기보다, 간단한 영상을 준비해서, 주의를 끌어보기로 했습니다.
조용하게 시작하는 곡이어서, 시작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 고급진 영상이 아니더라도, 전달하는 메세지만 확실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식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의 이야기와 연주자들과의 관계, 그리고, 곡 제목을 전달하는 메세지를 담았습니다.
축주를 부탁한 분은 부탁하는 마음으로 부담없이 해도 된다, 그렇게까지 안해도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축주를 받아들인 순간 부터, 그 무대는 온전히 연주자의 책임이 됩니다.
좋은 축주를 하게 되면, 본전이고, 망치게 되면 ... 음.. 생각하고 싶지도 않네요.
그렇게 해서 올린 축주입니다.
중간에 실수가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잘 마쳤다고 자평했습니다
무엇보다, 멤버들이 한자리에 무사히 모여서 연주를 끝까지 잘 마친 것만으로 성공입니다.
계획대로 동영상은 꽤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이끄는데에 성공했고, 이어지는 연주에 집중하게 하는데에 성공하였습니다.
축주를 또 하게된다면, 또 한번 써먹을 만한 툴인 것 같습니다.
(만들기는 힘들지만...)
스탠딩 마이크의 성능은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하지만, 보잉을 할 때마다 닿을까봐 주저 하게 되더군요. 실제로 리허설 때 자꾸 건드려서 신경이 쓰였습니다.
이런 경험 하나하나가 계속해 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 연주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주시는 것도 색다른 감동이었습니다.
축주를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감동은, 누군가에게 매우 큰 선물을 했다는 만족감일 것입니다.
받을 때보다 줄 때 마음이 더 푸근해진다고들 합니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곡과 편성, 그리고 마음 맞는 분들과 함께 축하 연주 하시고, 새로운 감동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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